[단편 이야기] 버려진 적들 - 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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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부시각 2019년 11월 18일 | 울티마 온라인 팀


버려진 적들의 새로운 단편 이야기 "한밤"이 공개되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해당 내용을 올립니다.


한밤


저자: EM 말라키


맥주는 마치 젖은 양피지같은 맛이 났고 마시 회관의 초는 꺼질 듯 말듯 했다. 듀프레는 뒤쪽 탁자에 앉아 퀘퀘묵은 맥주 한 잔을 비웠다. 술집 주인은 이렇게 늦은 밤에 새통을 따고 싶지 않았고, 듀프레는 그저 배에 오르기 전에 배를 달래고 싶었을 뿐이었다. 검을 세 번이나 확인한 팔라딘은 투덜거렸다.


“이 짓을 하기엔 나도 나이가 들었군.”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오피디안 전쟁 이후론 항상 전투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군.”


듀프레가 얼굴을 돌리니 젤롬의 대표색으로 칠한 판금 갑옷을 입은 한 병사가 보였다.


“제프리! 에오돈에서 불려왔나 보지?”


제프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를 당겼다.


“아주 늙은 전투마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고 있지.”


“이렇게 보니 반갑군.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포도주 좀 마시겠나?”


제프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돼. 야간 경계 병력을 시찰해야 하거든. 이 잭이란 친구가 한바탕한 뒤부턴 베스퍼 방어군을 지휘하고 있어. 그런데 이 쪼그막한 섬들때문에 도시를 완벽히 방어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단 말이지. 트린식의 장벽이 그리워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울부짖는 함대에 맞서는 함대를 지원하는 팔라딘과 기사단 지휘를 맡고 있네. 선원들은 뛰어나지만 언데드 놈들이 탑승하면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할테지.”


“울부짖는 함대라… 강령술사 놈들은 지긋지긋하군. 잭이 여기로 향했다고 놈들이 생각하는 이유라도 알 고 있나?”


“일부 상선 선원들이 단도의 섬 근처에서 검은 배 무리를 목격했다고 제보했네. 게다가 잭은 이곳과 인연이 있지. 남부 함대가 문글로우와 누젤름을 지키기 위해 오고 있지만 난 베스퍼에 온다는 데 걸지. 골칫거리는 항상 집을 찾아오기 마련이거든.”


제프리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무래도 야간 순찰 병력을 시찰한 뒤엔 마을 민병대가 쓸 보병창이라도 더 얻어내러 대장장이나 봐야겠구만.”


듀프레가 술값을 지불하고 망토를 집어들며 말했다.


“좋은 사냥이 되길 바라네, 늙다리 친구.”




영혼은 실낱같은 기억을 붙들고 있었다. 샤미노는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영혼의 우물의 영혼들이 그를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깊은 곳부터 울려 퍼지는 끊임없는 복종의 명령이었다. 샤미노는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육신은 없었지만 그의 감각들은 그를 괴롭혔고, 방황하는 영혼은 기억 속에 움츠러들었다.


샤미노는 수년 전의 긴 밤을 기억해냈다. 미녹의 모두가 잠도 자지 않고 아침에 출정을 할 병사들을 위해 급히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고향에서 먼 곳까지 온 순찰자는 자진해 친구를 도와 보병대에게 지급할 방패를 만들었다.


줄리아는 벌써 떡갈나무를 자르고 풀을 붙인 뒤, 다른 나무를 덧대고 있었다. 줄리아가 방패에 장식을 올리고 유약을 발랐다. 샤미노는 방패 위에 씌운 가죽이 벗겨지지 않게 놋쇠 못을 박았다. 일을 하면서 샤미노는 줄리아에게 왜 검이나 창이 아니라 방패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줄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저번에 검을 만들었어요. 필요하다면 다시 만들기야 하겠지만, 전 방패가 좋거든요. 내일이면 코브에서 싸우는 제 이웃을 보호하는데 제가 만든 방패가 쓰일테니까요.”


줄리아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보호받은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누군가를 돕겠죠. 분명 방패를 들면 무기를 든 사람보단 약할 거예요. 하지만 서로를 지탱해주고 보완해줄 수 있죠. 혼자라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 있잖아요.”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흘러갔다. 이야기 와중에 줄리아가 소중히 여기는 화려한 대형 괘종시계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라면 계절에 따라 천천히 움직여야 할 시계판 뒤의 밤하늘 별자리가 마치 수년이 지나가듯 빠르게 움직였다.


별자리가 점점 더 빨라지고 샤미노는 별자리에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제 더이상 미녹이 아니라, 별들이 반짝이는 공허에 있었다. 한 남자가 검은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남자는 샤미노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귀에 속삭였다.


“밤이 찾아오고 있소. 그러나 아직 한밤이 오기까진 시간이 있지. 그때를 이겨낼 수 있게 순찰자와 기계공은 다른 이들을 이끌어야만 하오.”


어떤 손이 샤미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뒤를 돌자 작업실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 세상을 떠난 그의 옛 친구가 그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


“시작할까요?”


아까 전까지 기억에선 방패에 못과 가죽을 들고 있었는데 지금 줄리아는 부서진 돌을 들고 있었다. 줄리아는 돌 조각을 하나씩 맞추더니 8개로 크게 나누었다. 샤미노가 물었다.


“이게 도대체 뭐요?”


줄리아의 유령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나눈 조각들을 맞추어 룬으로 만들었다.


“제 마지막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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